
주해(註解)
동래정씨(東萊鄭氏) 기미대동보(己未大同譜) 구발(舊跋)
종자(宗子)와 지자(支子)는 그 경중(輕重)이 다르지만 그 아버지가 사랑함은 비록 열 아들이라 하더라도 고르게 같고 자손은 멀고 가까움이 있으나 그 할아버지의 사랑은 비록 증손(曾孫) 현손(玄孫) 이하라 하더라도 같다. 이렇게 미루어 본다면 지금 우리 종족이 몇 만 명이라 하더라도 우리 조상들께서 고루 같게 사랑하실 것이니 사람으로서 참으로 그 조상을 사랑하지 않으면 모르지만 이미 선조를 사랑한다면 그 조상들께서 사랑한 바를 어찌 서로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 우리 문중에서 대동보(大同譜)를 만든 까닭이다.
우리 보첩은 선조 임당공(林塘公)께서 처음으로 만들었고 그 후 족조(族祖) 부윤공(府尹公)께서 편찬한 족보가 가장 자세하면 그 후 여러 차례 기어서 편찬할 것을 의논했으나 실행하지 못한 지 二백여 년이 되었다. 내가 지난 병진년 겨울에 여러 종인들과 내 집에서 모여 이 일을 의논하자 아무도 다른 의견을 내는 자가 없어 즉석에서 종이를 꺼내 각자 돈을 갹출(醵出)하고 일을 맡을 사람을 선정했는데 일이 너무 방대하여 三년이 지나서야 일을 마치게 되었다. 일이 끝나자 여러 족인들이 나에게 발문(跋文)을 쓰라고 하여 사양할 수가 없는데 보첩을 만드는 뜻은 전인(前人)들의 글에 다 갖추어져 있으니 내가 어찌 쓸데없이 더 말하겠는가? 거듭 전에 한 말로써 여러 종인들에게 말하노니 혹시라도 일족끼리 싸우거나 형제끼리 싸워서 외인(外人)들의 비난을 받게 하는 자는 우리 선조의 자손이 아니다.
기미년 가을 임당공(林塘公) 十一대손 만조(萬朝) 발함